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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재 이상설 선생 서훈 등급 상향 촉구 건의문 채택의 건(김기복 의원 대표발의)(김기복·이재명·이강선·장동현·김성우·임정열·성한경·윤대영 의원 발의)

(10시19분)

김기복 의원 진천군의회 김기복 의원입니다.

보재 이상설 선생 서훈 등급 상향 촉구 건의문 채택의 건에 대하여 제안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제안이유는 보재 이상설 선생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기반을 다진 선구적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서훈 등급에 선생의 공적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여 그에 걸맞은 ‘대한민국장’으로의 서훈 등급 상향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주요 내용은 건의문 낭독으로 대신하고자 하오니 건의문을 참고하여 원안대로 의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건의문을 낭독하겠습니다.

(의원 일동 기립)

보재 이상설 선생 서훈 등급 상향 촉구 건의문.

1870년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난 보재 이상설 선생은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기반을 다진 선구적인 인물이다.

또한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외교 활동과 민족교육 운동에도 헌신하며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다섯 차례에 걸쳐 고종 황제에게 조약 파기와 을사오적 처단을 촉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1906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문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에 힘썼으며, 1907년 고종 황제의 밀지를 받고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어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였다.

비록 일제의 방해로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이는 국제사회에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대한제국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선생은 권업회와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였으며, 특히 1914년 수립된 ‘대한광복군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보다 5년 앞선 최초의 망명정부로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에도 ‘신한혁명당’을 창단하여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였고, 1917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상설 선생의 독립운동 전반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서훈이 이루어졌으며, 헤이그 특사 활동, 최초의 망명정부 수립, 독립운동 기지 건설 등 선생의 공적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였다.

특히 이상설 선생은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정사(正使)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사(副使)였던 이준 열사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은 반면, 선생은 한 등급 낮은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머물러 있어 역사적 평가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더욱이 도마 안중근 의사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이상설이다. 이범윤 같은 의병장 1만 명이 모여도 이 한 분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말하며 선생의 위대함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는 독립운동 가치의 합당한 평가 및 기억계승 방안을 발표하며,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다양한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하게 평가될 수 있도록 독립운동 공적을 재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에 우리 진천군의회는 9만 진천군민의 뜻을 모아 보재 이상설 선생의 공적을 면밀히 재검토하고, 이에 합당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의 서훈 등급 상향을 강력히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하나, 보재 이상설 선생의 서훈 등급을 상향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의원 일동 「촉구한다! 촉구한다! 촉구한다!」)

하나, 보재 이상설 선생의 서훈 등급 상향을 위해 「상훈법」 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

(의원 일동 「촉구한다! 촉구한다! 촉구한다!」)

2025년 3월 19일

충청북도 진천군의회 의원 일동

(의원 일동 착석)